제 75호 (2024.04.01)

가장 평범한 일상 속에 숨은 보물

🍜 치즈라면과 참치김밥

몸이 안 좋아 일을 관두고 부모님 집에 얹혀살 때의 이야기에요.

밤에 친구를 집으로 불러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먹고 잠이 들었는데 몇 시간을 못 자고 깼어요. 너무너무 추워서 말이죠. 몸이 아주 뜨겁더군요. 힘들게 몸을 일으켜 타이레놀 몇 알을 물도 없이 꿀꺽 삼키고는 이불 한 개를 더 꺼내 몸에 똘똘 말아 다시 잠을 청했어요.

그냥 심한 감기인 줄 알았죠. 그런데 새벽 4시부터 거대한 고통의 물결이 몰려왔어요. 몸살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아파서 몽둥이로 두들겨 맞는 느낌에 몸은 빨갛게 달궈진 쇠구슬처럼 뜨거웠죠. 열 때문인지 통증 때문인지 의식과 무의식의 사이에서 연신 비명을 질렀지만, 고통은 점점 심해져 갔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집에는 하루 종일 아무도 없었어요. 타이밍도 안 좋게 부모님은 여행을 가셨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면 119를 누르고 구급차에 실려 갔다면 모든 고통이 빨리 끝났을 텐데 그 당시에는 이성마저 날라간 건지 계속 타이레놀만 끝없이 삼켰어요. 그리고 조금씩 의식을 잃어갔죠.

밤이 다시 찾아왔고, 집에 돌아오신 부모님은 방문을 열었다가 바닥에 널브러져 기절해 있는 아들을 발견하셨죠.

“조금만 더 늦었으면 큰일날 뻔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염증 수치가 엄청나게 높다고 하시더군요. 병실이 없어 응급실 한쪽 구석 간이침대에 구겨진 채 고용량 항생제를 하루 종일 맞았습니다. 그래도 몸은 좋아지지 않았어요. 몸이 퉁퉁 붓기 시작하더군요. 몸이 부서질 듯한 느낌은 여전했고 열은 40도를 기준으로 위아래로 춤을 추었죠.

아파서 잠을 이루기도 힘들었는데 응급실이라 불마저 끄지 않더군요.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죠. 무엇보다 힘든 것은 왜 제가 아픈지 이유를 몰랐던 거였어요. 아픈 몸을 이끌고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온갖 검사를 받았죠. 나중에는 부어오른 피부 조직도 잘라가더군요. 의사 선생님들은 고개만 갸우뚱거릴 뿐 병명이 무엇인지 진단을 못 내리시더군요.

항생제를 엄청나게 퍼붓고 3일 만에 병실을 얻어 안락한 침대에 들어가자, 열이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몸은 퉁퉁 부어있었지만요. 부모님과 친구들은 열이 내려갔다는 소식에 무척 기뻐했지만 저는 더 우울했어요. 여전히 이 병이 뭔지 알 수 없었고, 몸은 붓다 못해 살이 조금씩 터지고 있었죠. 목도 퉁퉁 부어 모난 돌을 삼키는 통증을 느끼며 음식을 넘겼죠. 친구들이 사준 마이구미를 쪽쪽 빨며 천장을 바라보는 게 유일한 낙이었어요. 보드라운 마이구미에서 배어 나오는 달콤함을 느끼다 보면 고통과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잊을 수 있었죠.

어느날인가 피가 묻은 환자복을 입고 발을 질질 끌며 아버지를 따라 지하 식당가로 갔어요. 기분 전환도 시켜줄 겸 식사도 하실 겸 아들의 수액 폴대를 끌고 나오신 것이죠. 드실 거면 제대로 된 식사를 드실 것이지 편의점에서 싼 음식 몇 개를 사오셔서 드시더군요. 마음 아프게 시리.

그러다 문득 저쪽에서 끓인 라면과 김밥을 먹고 있는 사람을 봤어요.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어요. 갑자기 치즈라면에 참치김밥이 너무 먹고 싶은 거 있죠. 어쩌면 영원히 저 음식을 먹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절망감에 눈물이 나는 거에요.

참 웃기죠. 고작 치즈라면에 참치김밥이라뇨.
평상시엔 죽기 전에 미슐랭 3스타 음식 같은 거창한 것을 먹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에요.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모리 교수가 병상에 누워서 말했죠.
“모든 것을 누릴 수 없을 때가 온다네.”

모리 교수는 덧붙입니다. 우리의 삶 속의 선물은 특별한 날이 아니라 평범하다 못해 지루한 오늘 하루가 가장 큰 선물이라고요. 늘 똑같은 출근길, 질리지 않는 제육 볶음, 더울 때 한입 베어먹는 메로나 같은 거요.

몸이 아파 일상을 모두 빼앗기고 나서야 치즈 라면에 참치 김밥에 녹아든 선물 같은 일상을 깨달은 거지요. 치르치르의 파랑새 이야기 같죠? 그토록 찾던 행복의 파랑새는 우리 집에 있었다는 거요.

어쨌든 일주일 동안 항생제에 푹 절인 덕에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멀쩡해지기까지는 두어 달이 더 걸렸지만요. 2차 조직검사까지 했지만 끝내 원인은 찾지 못했습니다. "일단 환자가 살아났으니, 만세다"라는 느낌이었죠. 뭐 찝찝해도 어쩌겠어요? 살아났으니 어쨌든 오케이인거죠.

퇴원 후 제 첫 외식 메뉴는 당연히 치즈 라면에 참치 김밥이었습니다. 세상 어떤 음식보다 맛있었어요. 고소한 라면 국물에 부드럽게 감기는 마요네즈와 참치. 이 사소한 음식들이 주는 행복에 저는 일상의 소중함을 마음 깊이 새길 수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저는 여전히 욕심쟁이입니다. 여전히 몸은 좋지 않지만, 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이 정말 많아요. 오늘도 바쁘게 움직이죠. 그러나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틈틈이 치즈 라면과 참치 김밥을 먹으며 평범한 순간을 만끽할 줄 안다는 거예요.

이렇게 저에게 치즈라면과 침치 김밥은 선물과 같은 소중한 일상을 의미해요.
여러분에겐 어떤 것에서 소중한 일상을 느끼시나요?

함께 나누고 싶어요.

📿 여러분들이 가진 구슬을 엮어 삶의 가치를 만들어 드립니다, 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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