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문장은 읽는 순간보다, 지나고 나서 더 오래 남습니다. 얼마 전 박신양의 전시 〈제4의 벽〉에서 본 이 문장처럼요.
“얼마나 오랫동안 깊게, 그리고 진정으로.”
이 문장을 떠올리며 한동안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삶을 얼마나 깊이 살아가고 있는가. 사람과 일, 그리고 나 자신을 얼마나 진심으로 마주하고 있는가.
짧은 문장이었지만 쉽게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무언가를 잘 해내는 방법에 대한 말 같기도 했고,
어쩌면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질문 같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그 질문에서 시작된 이야기를 전해봅니다.
우리는 늘 다른 기준에 익숙합니다
우리는 자주 얼마나 빨리, 얼마나 많이, 얼마나 효율적으로를 묻습니다.
얼마나 성과를 냈는지,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얼마나 눈에 띄는 결과를 만들었는지를 확인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문장은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오래 붙들었는가. 얼마나 깊이 들어갔는가. 얼마나 진심으로 마주했는가.
생각해 보면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들은 대부분 이 세 가지를 필요로 합니다.
오래 바라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사람을 이해하는 일도 그렇습니다. 하루 이틀로는 알 수 없는 마음들이 있습니다. 관계는 시간을 지나며 비로소 본모습을 드러내고, 그제야 우리는 누군가를 조금 안다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여도 깊이 들어가 본 사람만 아는 세계가 있습니다.
표면만 스치면 쉽게 말할 수 있지만, 깊이 들어갈수록 말은 오히려 조심스러워집니다.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결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진심입니다
진정성이라는 말은 너무 자주 쓰여서 오히려 낡아 보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늘 진심이었습니다.
기술보다 먼저 닿는 태도, 능력보다 오래 남는 마음, 결국 우리를 기억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을 했는가 보다 어떤 마음으로 했는가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 문장을 떠올리며 문득 제 자신에게도 질문하게 됐습니다.
나는 삶을 얼마나 깊이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사람과 일, 그리고 나 자신을 얼마나 깊게 바라보고 있는가. 나는 이 시간을 얼마나 진정으로 살아내고 있는가.
제4의 벽은 삶에도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전시의 제목인 ‘제4의 벽’ 도 그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원래 제4의 벽은 무대와 관객 사이에 보이지 않게 존재하는 경계를 뜻합니다. 배우는 연기하고, 관객은 바라보지만 서로 가까이 있으면서도 분명히 나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삶에도 그런 벽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거리, 타인과 진짜로 연결되지 못하게 만드는 마음의 막, 괜찮은 척, 잘하고 있는 척, 다 아는 척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경계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각자의 제4의 벽 뒤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보이는 나와 진짜 나 사이에서, 말하는 마음과 숨겨둔 마음 사이에서, 가까워지고 싶지만 쉽게 넘어가지 못하는 어떤 선 앞에서요.
중요한 것은 벽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알아차리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 벽을 완전히 허무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그 벽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일은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지금 너무 멀리서만 살고 있지는 않은지, 겉만 보고 쉽게 지나치고 있지는 않은지, 진심을 들키지 않으려 적당한 거리 뒤에 숨고 있지는 않은지 말입니다.
삶을 좋게 만든다는 건 대단한 변화 이전에 이런 태도를 회복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 더 오래 바라보는 것. 조금 더 깊이 이해해 보려는 것. 조금 더 진심으로 대하는 것.
생각보다 많은 것은 여기서부터 달라집니다.
결국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밀도로 남습니다
관계도, 일도, 성장도 결국 속도가 아니라 밀도로 남습니다. 그리고 그 밀도는 얼마나 오래, 얼마나 깊게, 얼마나 진정으로 살아냈는가에서 만들어집니다.
그날 전시장에서 만난 한 문장은 작은 문장이었지만 제게는 꽤 오래 남는 질문이 되었습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얼마나 오랫동안 깊게, 그리고 진정으로 쌓여가고 있는가.
오늘을 너무 급하게만 지나고 있다면, 한 번쯤 이렇게 물어봐도 좋겠습니다.
나는 지금, 얼마나 오랫동안 깊게, 그리고 진정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 🌈 커피언니가 이야기하는 삶의 무지개, 크릿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