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1층 카페 외부에 놓인 테이블에 멍하니 앉아 사람들을 봤습니다. 바쁘게 통화하며 걸음을 재촉하는 회사원, 어린이집 가방을 메고 조부모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예쁘장한 아이, 체육복을 입고 친구들과 장난치며 지나가는 학생들이 보이네요. 다들 다른 모습으로 저를 지나갔지만 다들 행복해 보였습니다. 부럽더군요.
톨스토이가 쓴 "안나 카레니나"를 보면 제일 처음에 '행복한 가정은 살아가는 모습이 서로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모양으로 괴로워하는 법이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다들 사는 모습이 비슷해 행복해 보였던 걸까요?
저는 제법 자존감이 높은 사람입니다. 자존감을 이루는 세 가지 요소가 자기효능감, 자기조절감, 자기안정감이라고 하는 데 저는 이 세가지 요소가 모두 높습니다. 그런데 올해 들어 낯선 경험을 자주 합니다. 열심히 살고 있는데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것 같고, 더 잘하려고 애쓸수록 뒤로 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일상생활에서 흥미나 즐거움이 줄어들고 피로감과 무기력함이 쉽게 느껴집니다. 이러한 제 자신의 감정선이 심상치 않고 도움이 필요하다 느낀 건 오늘 경험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당시 제 의식의 흐름을 있는 그대로 적어봤습니다.
점심 밥을 먹고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잠시 쉴 겸 창밖을 바라봤어요. 노랗고 빨갛게 물든 나뭇잎이 나무와 거리를 물들이고 있고, 그 거리를 오가는 차와 사람들이 너무 아름다워 보이네요. 순간 그 속에 뛰어들어 이 아름다움을 온 몸으로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사람 이야기가 아니라 이 글을 작성하기 20분쯤 전에 들었던 제 생각입니다. 너무 위험하다 느껴져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보통 감정은 날씨에, 기분은 계절이나 기후에 비유할 수 있다고 합니다.
"보통 감정을 날씨에, 기분은 계절이나 기후에 비유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뀔 수 있는 것이 날씨다. 같은 날에도 맑은 하늘과 사납고 흐린 하늘이 교차하는 것처럼 우리의 감정도 날씨처럼 쉽게 움직인다. 이에 비해 계절은 대체적인 특성이 있다...(중략) 기분도 마찬가지다. 일상에서 느끼는 우울감과 우울증에서의 우울을 날씨와 계절의 차이에 빗대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왜 자꾸 내 탓을 할까 중-
우울할 만한 일이 생겨서 우울한 감정이 느껴지는 건 정상입니다. 단순하고 일시적인 감정의 변화라면 바꿀 수 있겠죠. 그런데, 계절과 같이 지속되는 기분을 쉽게 바꿀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이 우울증에 걸려서 감정과 생각과 행동이 변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순서는 그 반대라고 합니다. 뇌에 편도체라는 부위가 활성화하면 두려움, 슬픔, 고통 등의 감정을 쉽게 느끼게 되고, 전두엽의 기능이 저하되어 감정과 생각을 잘 조절할 수 없게 되는 거죠. 즉, 뇌의 기능이 달라져서 나타나는 많은 변화를 우울증이라고 진단합니다.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의지나 노력으로 이겨내라는 말이 소용 없는 게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합니다. 기능이 고장난 것이기에 고쳐야죠. 고장난 컴퓨터를 보며, "힘내", "넌 할 수 있어"라고 말해도 소용 없는 것처럼 우울증이 온 것 같을 땐 전문가를 찾아 고쳐야 합니다.
번아웃 증후군
신체의 연료가 모두 소진되었는데도 계속 달리다가 극도의 피로감과 의욕 상실, 무기력증과 함께 자신의 무능력을 탓하는 자기혐오가 찾아와 모든 일상을 거부하게 되는 것을 '번아웃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주로 성실하고 부지런하며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번아웃 증후군에 자주 걸리며 이를 예방하려면 먼저 자기가 속한 모든 영역의 역할을 "완벽히" 해내려는 슈퍼맨 또는 슈퍼우먼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합니다.
번아웃 증후군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는 몇 가지 지표가 있습니다.
- 수면의 질이 나빠졌나요?
- 건망증이 갑자기 심해졌나요?
- 성격이 변한 것처럼 짜증이 늘어났나요?
그렇다면 번아웃 증후군이 온 것이 아닌지 확인해 보세요.
번아웃 증후군은 졸음운전과 비슷해 운전 중 졸음이 올 땐 휴식을 취하고 잠깐 눈을 붙이는 것이 가장 좋은 것처럼, 무엇보다 휴식이 번아웃 증후군에 가장 좋은 해결책입니다. 물론 가장 좋은 해결책이 이 현대사회에서는 가장 어려운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다만 안자려고 애쓰며 운전을 계속하다가 사고 나는 것보단 쉬었다 가는 게 안전한 것처럼, 번아웃 증후군 증상이 관찰될 때에는 쉬었다 가는 게 결국 자신을 위하는 길임을 명심하면 좋습니다.
번아웃 증후군과 우울증의 증상이 90% 가까이 일치한다는 결과도 있는데, 번아웃 증후군의 경우 증상을 일으킨 원인이 뚜렷하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해가 점점 짧아지고 추워져서 일까요, 저도 그렇지만 주변에서도 우울증이나 번아웃 증후군으로 힘들어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혹시 지금 힘드신가요? 잠시 자신을 바라보며 정확한 '나'의 상태를 파악해 보세요. 그리고 꼭 전문가를 찾아가거나 좋은 휴식을 취하세요. 인생은 길고 우린 아직 눈부시게 젊잖아요.
이 글은 허규형님의 "나는 왜 자꾸 내탓을 할까"를 읽고 썼습니다. 일부 내용은 차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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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아한 세상을 소개하는 지식노동자, 앤드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