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 외우면 복이 와요

고난의 영어 행군

조금 특이한 케이스입니다만, 저는 아버지에게 영어를 배웠습니다. 아버지는 영어 실력으로 삶을 바꾸신 분이셨거든요. 영어뿐만 아니라 프랑스어도 잘 하셨던, 언어에 재능이 있던 분이셨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집안 서재에 가득 꽂힌 외국어 책들을 읽고 싶었던 저는 아버지의 영어 수업을 부푼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첫 날, 아버지께서는 중학교 1학년 교과서를 던져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부터 이 교과서의 본문을 토씨 하나 안 틀리게 외워."

그렇게 저는 그날부터 울며 겨자 먹기로 교과서를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아침이면 출근 준비하시는 아버지 옆에 서서 외운 내용을 줄줄 읊었지요. 4년 동안이요. 영어 교과서 4권이 쉼표 하나 안 틀리게 제 머리 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그럼 이 고통스러운 영어 암기 행군을 통해 뭘 얻었을까요?

실력, 자신감, 흥미. 이 세 가지입니다.

암기가 외국어 습득에 효과적인 이유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제 경험상 암기는 외국어 학습의 왕도라 믿습니다.

언어는 결국 사람과의 소통을 위한 도구이며 소통의 대부분은 일상 생활 속의 대화입니다. 그리고 일상적인 대화에서 사용되는 단어와 문장은 제한적입니다. 영어의 경우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는 단어의 수는 2,000개 정도로 추정됩니다. 문장의 경우는 수백 개 안쪽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암기를 하면 효율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해집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자신이 아는 단어와 문장을 듣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언어 학습에서 어휘 암기는 매우 중요합니다. 충분한 어휘가 머리 속에 있으면, 듣기와 읽기 능력이 향상되어 의사소통을 더 원활하게 할 수 있지요.

게다가 단어와 문장을 암기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영어의 구조와 문법의 기반을 닦을 수 있습니다. 세부적인 문법 공부 없이도 어떤 문장이 어색한지, 어떻게 해야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지 무의식적으로 터득하게 되지요.

무엇보다 암기하면 자신감이 크게 향상됩니다. 외국어의 반은 자신감이라는 말이 있듯이, 일반적인 상황에서 어떤 문장을 써서 대화를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면 영어의 장애물인 두려움을 날려버릴 수 있지요. 또한 자신감은 영어 실력을 한 걸음 더 깊게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됩니다.

효율적인 암기를 위한 조언: 플래시카드

그러면 고난의 행군과 같은 암기를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효율적이고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자신 있게 누적식 플래시카드 방식을 추천드립니다. 플래시카드는 암기 카드라고도 하는데 앞면에 단어나 문장, 뒷면에 뜻이나 발음이 적힌 카드입니다. 저는 요일별로 칸막이가 있는 박스에 카드들을 넣어서 외우곤 했습니다. 월요일엔 월요일 카드를 외우고, 화요일엔 월요일과 화요일 카드를 학습했죠. 이런 식으로 누적하여 금요일엔 5일간의 카드를 암기했습니다.

누적식 플래시카드 암기법이 효과적인 이유는 반복을 통해 기억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암기는 반복인데 이 방식을 활용하면 최대 5번까지 반복이 가능하지요. 또한 외우지 못한 카드는 따로 관리하며 외울 때까지 더 많은 반복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카드 묶음을 평상시에 가지고 있으면 언제나 틈틈이 공부할 수 있습니다. 평상시에 흘려보낼 수 있는 작은 시간들을 외국어 학습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죠.

하지만 언제 카드를 사서 손으로 일일이 단어와 뜻을 쓰면서 공부하겠습니까. 이제는 이 모든 과정을 Anki라는 앱을 사용하여 쉽게 관리할 수 있습니다. Anki 앱은 에빙하우스의 망각 곡선 이론을 활용해서 단어를 까먹을 때 즈음에 다시 물어봐 주는 간격 반복 시스템(Spaced Repetition System)을 채용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어려운 내용은 더 자주, 쉬운 내용은 덜 자주 복습하게 해줍니다. 게다가 플래시카드도 사용자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합니다.

아래의 링크를 통해 Anki 앱의 사용법을 배우실 수 있습니다. 1시간 정도 투자해보세요. 장담하건데 학습 시간을 1,000시간 이상 아낄 수 있습니다.

아직도 그렇게 암기하니? | \[Anki 사용법 Ep 1\] Anki 기본 기능, 공유 덱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영어 단어는 일단 2,000개를 외우시면 언덕을 하나 넘으실 거예요. 일본어의 경우는 눈을 꼭 감고 한자 1,900개만 외우시면 대부분의 문장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렇죠. 암기는 결코 쉽지 않아요.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지능과 상관없이 누구나 시간을 들이면 할 수 있는 것이 암기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길어요. 하루에 고작 5개 단어씩 외운다고 해도 2년이면 무려 3,000개가 넘는 어휘를 습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이면 2년마다 일상 대화가 가능한 외국어를 하나씩 늘릴 수 있지요. 길게 보면 꽤 매력적이지 않나요?

그러니 오늘부터 조금씩, 하지만 매일매일 문장과 단어를 외워보세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크게 도약한 여러분의 영어 실력을 맞이하실 수 있을 겁니다.

—📿 여러분들이 가진 구슬을 엮어 삶의 가치를 만들어 드립니다, 타래—

영어 공부를 위한 도구 추천

저는 초등학교 6학년 이후로 10년간 영어 공부를 안 했어요. 성인이 되어서까지 중등 영어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와중에 22살 때 지적 욕구가 폭발하며 영어 학습을 시작했고, 3년이 지난 현재는 제가 관심 있는 주제의 가벼운 영문을 번역 없이 대략 알아먹을 수 있을 만큼 실력이 늘었어요. 영어 학원에 다니지도 않았고 특별히 영어를 집중적으로 공부한 것도 아니에요. 영어를 따로 공부한다기보단 제가 원래 하던 것에 영어를 곁들였어요. 그러다 보니 영어를 학습하는 과정이 즐거우면서도 유익했어요. 제가 어떻게 영어를 학습하고 있는지 소개해 드릴게요.

영어로 생각하고 말하기

저는 일상에서 영어로 생각하고 말하기를 하는데요. 이때는 두 가지 유형이 있는 것 같아요. 첫째는 영어 단어나 문장이고, 둘째는 영어 문화에요.

일상에서 보거나 느낀 것을 영어로 말해요. 예를 들어 내가 길을 걷고 있어요. 그러면 이 상황을 영어로 표현해 봐요. “I am walking” 까지는 제가 알아요. 그런데 ‘인도’가 영어로 뭔지 모르겠는 거예요. 그러면 네이버 사전에 검색해서 ‘Sidewalk’라는 걸 알아내요. 이제 문장을 만들어서 말해봐요. “I am walking on the sidewalk”. 밖에서는 혼잣말하는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작게 속삭이듯이 말해요.

이제는 영어 문화에 관해서 이야기해 드릴게요. 깜짝 놀랄 때는 “웁스!” 라고, 한다거나, 누군가 기침을 하면 “Bless you”라고 해요.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면 “Long time no seen!” 또는 “It’s been a long time~”이라고 말하며 악수하거나 포옹해요. 매일 아침 부모님께 “Good morning”이라고 인사해요.

영어로 말할 때는 항상 원어민처럼 발음하려고 노력해요. 보통 사람들을 보면 원래 영어대로 발음하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커.피.’ ‘치.킨’ 이렇게 한국어를 말하듯이 발음하는 것 같은데요. 하지만 저는 ‘커~Fee”, “츀인” 이렇게 ‘F’ 발음과 억양과 강세를 원어민처럼 발음하려고 노력해요. 커피 매장에서 주문할 때도 “카라멜 마끼아또 커~Fee 디카Fain으로 주세요~” 라고 말해요. 저희 누나는 이상한듯 처다보며 부끄럽게 왜 그러냐고 그러는데요. 저는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히 말해요. 그러다 보니 저는 요즘 해외에서 있다가 왔냐는 말을 종종 들어요. 일상에 이런 노력이 무의식적으로 영어와 가까워지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영어와 관심사를 묶기

영어 학습을 더 효과적으로 만드는 방법의 하나는 나의 관심사와 영어를 연결짓는 거예요. 그러면 영어 학습에 대한 부담감이 줄어들어요. 게다가 영어에 양질의 자료가 많기 때문에 관심사에 대해 더 많은 양질의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일거양득이에요. 저는 예전에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공부한 적이 있는데요. 이런 경우에는 영어가 굉장히 유용해요. 왜냐면 한국어보다 영어 자료가 압도적으로 많거든요. 한국어로 검색했을 때는 찾기 어려운 정보들을 영어로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었어요.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대한 관심 + 영어의 유용성 덕에 저는 영어 사용에 대한 동기가 커졌고, 영어를 공부한다는 생각이 거의 들지 않으면서 영어를 학습했어요.

또 다른 예시로는 생산성 관련 지식 또한 영어 컨텐츠가 훨씬 많아요. 그리고 Obsidian 같은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고 대중성이 적은 앱을 익힐 때도 영어가 유리해요. 이런 경우에 한국어 자료는 거의 없어요. 최신 정보 또는 양질의 정보, 한국 문화에서는 관심이 덜 한 정보들이 필요할 때 영어를 읽을 수 있는 것은 굉장한 무기에요.

요즘은 ChatGPT와 영어로 자주 대화하는데요. 영문 웹 아티클을 읽는 것이 부담되는 분들께 추천해 드리고 싶은 방법이에요. 웹 아티클은 글이 너무 길고 어려운 어휘를 사용할 때가 있어요. 하지만 ChatGPT는 내게 필요한 부분만 요약할 수도 있고, 이해가 잘 안되는 표현은 쉽게 바꿔 달라고도 할 수 있거든요.

도구 추천

제가 영어 학습을 하며 사용하는 편리한 도구들 몇 가지 추천해 드릴게요.

1. Easysubs [Extension]
   유튜브나 넷플릭스의 영어 컨텐츠를 볼 때 유용해요. 자막에 마우스를 올리면 영상이 멈추면서 해당 단어의 뜻을 알려줘요.

2. Youglish [Web]
   영어 발음이 궁금할 때 유용해요. 발음이 궁금한 단어나 문장을 검색하면 이게 사용된 유튜브의 영상을 찾아와서 보여줘요. 그래서 다양한 상황, 속도, 사람들의 발음을 들어볼 수 있어요.

3. DeepL [Web / Extension / App]
   현존하는 최강 번역 툴이에요. Extension을 설치하면 브라우져에서 선택한 문자를 번역할 수 있어요. App을 사용하면 브라우져 밖에 어떤 앱에서든 영어를 선택한 후 단축키를 누르면 번역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