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을 떨어트린 아이

홈플러스 푸드코트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잠시 뒤 한 아이도 물을 마시러 왔습니다. 제 키의 절반도 안되는 귀여운 남자아이였습니다. 아이는 자외선 건조기에서 컵을 꺼내려 했습니다. 조그만한 키로 팔을 쭉 뻗어 문을 가까스로 열었습니다. 아슬한 자세로 스텐 컵을 집어 꺼내더니, 결국 떨어트렸고 땡그랑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녀석은 주변 눈치를 쓱 보고서는 컵을 제자리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새 컵을 꺼내 문을 닫으려던 찰나, 저는 아이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방금 떨어진 컵 주실래요?”

아이는 반쯤 닫은 문을 다시 열어 떨어졌던 컵을 제게 건넸습니다. 저는 가볍게 눈을 맞추고 그 컵을 치웠습니다.

이 사건은 실수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실수”에 대한 저의 정리된 생각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누구나 실수를 하지만

아이들은 자주 실수합니다. 세상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모든 일이 낯설 테지요. 나이를 먹으며 경험이 늘어갈수록 실수의 빈도가 줄어듭니다. 하지만 어른들도 실수를 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실수하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 처음 하는 일은 미숙하기 때문에 실수할 수 있습니다. 일을 능숙히 한다는 것은 그 일이 몸에 익어서 적은 의식 수준으로도 작업을 수행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능숙한 수준에 다다르기 이전에는 절차에 따라 차례로 집중해서 수행해야 하는데요. 그러다 보면 속도가 느려집니다. 답답한 나머지 역량 이상의 속도를 내면 실수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두 번째, 너무 긴장했을 때 실수합니다. 적당한 긴장감은 집중력을 높여주지만, 그 정도가 너무 크면 실수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더욱 긴장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심리학에는 월렌다 효과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부정적인 결과를 너무 걱정하여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심리상태입니다.

반대로 자신감이 넘쳐 자기 능력을 과신하다가 실수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이는 주의력을 떨어트리고 인지적인 노력을 줄여 실수 가능성을 높입니다. 부정적인 정보에 대한 민감성이 떨어져 심각한 문제를 놓칠 가능성도 커집니다.

마지막으로 과로하여 피곤한 상태거나,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정신없을 때 실수하기 쉽습니다. 모두가 너무도 잘 알다시피 피로는 뇌 기능에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멀티테스킹 또한 나의 능숙도를 넘어서는, 복수의 과제를 동시에 진행하면 실수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위처럼 실수를 하는데는 빠져나올 수 없느느 다양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실수 자체보다 다른 곳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바로 실수를 저지른 이후입니다.

사람 그리고 상황에 따라 실수를 한 뒤의 반응은 다양합니다. 이를 6가지로 유형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의 마음을 표현
2. 실수를 만회하거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
3.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부인하거나 책임을 회피
4. 어쩔 수 없었다며 변명하며 정당화
5. 자기 잘못을 지적한 상대방을 공격
6. 지나친 자책과 수치심

1, 2번의 행동은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유형입니다. 반면 3번에서 6번의 유형들은 “무책임”, “적반하장”, “불신”, “부도덕” 등의 부정적인 평가를 받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실수를 저지른 뒤 후자와 같은 유형으로 반응하곤 합니다. 왜 그럴까요?

용기의 부재일까

다음 네 가지가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첫째, 처벌과 비난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자신의 과오가 드러나면 그에 상응하는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을 염려합니다. 가령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혼나는 게 두려워 거짓말을 하곤 하지요.

둘째, 부끄러움과 수치심입니다. “이 정도는 당연히 할 수 있어야지”라는 생각이 강할수록 수치심의 정도는 커집니다. 나의 내면적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거죠.

셋째, 자존심과 체면입니다. 이는 부끄러움이나 수치심과 닮았지만, 원리는 약간 다릅니다. 부끄럼과 수치심은 그 기준이 자기 내면에 있다면, 자존심과 체면은 자기 외부인 타인의 평가에 의해 작동합니다.

넷째, 신뢰를 잃을까 걱정하기 때문입니다. 신뢰를 잃으면 권위를 상실하게 됩니다. 전문가는 클라이언트에게 전문성을 보여야 하며, 양육자와 선생님은 아이나 학생의 존중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실수하는 모습을 보이면 신뢰를 잃게 될지도 모릅니다.

위와 같은 이유로 자신의 실수를 회피하거나 은폐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은 되려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초기에 간단히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가 시간이 지나면서 더 복잡해지고 해결하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작은 오류를 숨겼다가 나중에 큰 사고로 이어지거나, 사소한 오해를 풀지 않아 인간관계가 돌이킬 수 없이 악화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실수를 숨기려는 시도가 발각되면, 더욱 용납받기 어렵습니다. 정직하게 실수를 인정하고 책임지려는 태도를 보였다면 오히려 이해와 용서를 받을 수 있었을 상황에서, 은폐 시도로 인해 더 큰 비난과 처벌을 받게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감췄을 때 다른 문제들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4가지의 감정이 큰 장애물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관점의 전환

실수의 문제가 클수록 나를 향한 비난은 커질 겁니다. 그러면 더욱 솔직해지기 어렵습니다. 이 비난이 영원할 것만 같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한 가지 희망적인 사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군가 큰 잘못을 저지르면 맹렬히 비난하고 이를 당연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자신의 비난이 생각 이상으로 상대를 아파한다는 사실을 자각했을 때 미안함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게는 진심 어린 사과와 후속 노력을 통해 결국은 용서받을 수 있지요.

하지만 그 과정을 견디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럴 때 다음 세 가지 관점이 힘이 되어줄 겁니다.

첫째, “사람들이 화를 내는 이유는 나 때문이 아니다. 내가 저지른 실수가 불러온 문제들 때문이다.” 이 관점을 통해 나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 역지사지로 생각하면 상대에게 공감할 수 있습니다.

둘째, “누구나 실수를 하고, 마음이 불편해진다.” 나의 상황을 인간의 보편적 특징으로 받아들일 때 마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셋째, “새로운 문제를 발견했다. 어떻게 고치면 좋을까?”라는 문제 해결의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내가 저지른 실수는 다른 사람도 저지를 수 있는 실수입니다. 그렇기에 조직의 입장에서는 함께 해결해야할 문제이지요.

넷째, “좋게 살면 좋게 돌아오리라” 저는 준 것은 어떠한 형식으로든 되돌아온다고 믿습니다. 일종의 보상 심리죠. 내가 먼저 관대하면 다른 사람도 나에게 관대하게 대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는 꽤 위안이 됩니다.

우리가 실수하는 이유 , 실수한 뒤 반응과 감정의 종류 그리고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 보았습니다.

이 글이 현재 자신의 실수로 인해 곤란한 처지에 빠지신 분에게, 그리고 미래에 실수를 저지를 여러분에게 힘이 되길 바랍니다.

🦒 당신이 어떤 사람이던 좋아요. 진실한 모습에 다가서는, 이태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