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재미있게 읽고 있는 책이 있습니다. 김성우 작가의 '인공지능은 나의 읽기-쓰기를 어떻게 바꿀까'입니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구매했습니다. 표지의 알록달록하고 자유로운 텍스트의 배치, 질문 형식의 친절한 제목을 보며 'AI로 글 쓰는 방법 같은 실용서겠지'라고 생각했었지요. 하지만 그것은 편견이었습니다.

책은 기대 이상으로 깊은 내용을 담고 있었고, 새로운 관점을 배웠습니다. 저는 AI를 '생산성 도구'로 생각해왔지만, 이 책은 기존의 방식들에 대해 근본적으로 되돌아보는 '계기'로서의 AI를 이야기합니다.

저자가 언어학자였기 때문일까요? 그의 문장들에 압도됐습니다. 요약 노트를 쓰는데 '원문보다 더 나은 문장'을 쓸 자신이 없어, 그대로 옮겨 쓸 정도였습니다. 문단에 핵심 내용에 하이라이트를 하고, 그 문단들을 순서에 맞게 배치하여, 그것들의 소제목을 짓는 식으로 정리하였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요약한 노트를 기반으로 글을 썼습니다. 이번 뉴스레터는 책 내용 일부에 대한 요약이자, 저를 설레게 한 한 문장에 대한 소개이기도 합니다.

자, 그럼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AI 기술 발전의 이면

권력의 요구

'인공지능의 시대'라고 합니다. 선언에 부응하듯 지난 한 해에만 수 백권의 인공지능 관련서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교육도 기업도 미디어도 이 거대한 변화에 올라타지 못하면 도태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특정한 시대를 선언하는 일은 사회적 변화의 반영이면서 거대한 욕망의 분출입니다. ...이런 흐름은 '인공지능의 시대'라는 말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세계·'인공지능'과 '인간지능'이 구별되지 않는 세계·인공지능 바깥을 상상할 수 없는 세계를 지향합니다.

기업을 대상으로 AI를 교육하는 대표님과 만나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처음 AI를 배울 때는 즐거웠지만, 요즘은 힘들고 벅차다고 하십니다. 새로운 기술은 빠르게 쏟아지고, 따라가지 못하면 뒤처질 것 같아서 '해야 하기 때문'에 배우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 상황은 저자가 이야기하려는 것 중 하나일 것입니다. 다양한 매체에서 'AI에 대한 이해와 활용'을 요구하고, 그리고 이러한 요구를 따르지 못하면 도태될 것이라는 공포감을 심습니다.

기술의 불평등

어떤 이들은 AI 기술이 발전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기술의 혜택을 받을 것이라 낙관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역사와 현재의 사례들을 통해 알려줍니다.

인쇄술의 시대가 문해력의 불균등을 해소하지 못했고, 웹 기반 교육의 시대가 평등하고 정의로운 교육을 실현하지 못했으며, 인터넷의 시대라고 하지만 전체 인구의 40%에 가까운 인구는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합니다. 영상의 시대가 열렸다고 하지만 하나의 영상을 두고 분열하고 서로를 비난합니다.

누군가는 '뒤처지며' 누군가는 비인간적인 노동으로 내몰립니다. 누군가는 위안을 얻겠지만 누군가는 더욱 깊은 고립감과 무기력함을 느낍니다. 모두를 위한 인공지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공지능이 만드는 삶의 지형은 결코 평평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AI가 우리 삶에 미칠 영향을 간과할 수는 없겠지요. 'AI 리터러시'라는 개념이 널리 사용되는 현시점에, 저자는 언어학자로서 '리터러시'와 '문해력'의 의미에 대해 분석하고, 'AI 리터러시'에 대한 정의를 제시합니다. '리터러시와'와 '문해력'에 대한 분석은 생략하겠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원서를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AI 리터러시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AI 리터러시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AI의 원리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 그리고 그것의 한계와 윤리적 문제를 비판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 정도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는 AI 리터러시의 3가지 요소를 제안하는데요. 저는 그것들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1. 기능적 리터러시: 다양한 인공지능 서비스와 어플리케이션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역량
2. 비판적 리터러시: 인공지능 자체에 대한 분석적이고 다면적인 이해. 인공지능이 사회와 문화·제도와 정치·일상과 교육·환경과 생태계 등에 미치는 광범위한 영향에 대한 지식과 관점에 대한 역량.
3. 성찰적 리터러시: 인공지능과 함께 변화하는 자기 자신, 나아가 자신을 둘러싼 다양한 관계에 대해 깊이 돌아볼 수 있는 역량

기능적 리터러시와 비판적 리터러시는 너무도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세 번째인, 성찰적 리터러시는 신선했습니다. 그것은 기술과 나의 관계, 그에 비롯한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성찰을 요구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AI는 더 이상 일방적으로 사용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서로 상호작용 하는 변화의 주체인 것이지요. 나의 발화가 AI에게 영향을 미치고, 다시 AI가 나와 사회에 영향을 미치며 변화함을 통찰하는 능력이겠지요.

저자는 위 세 가지 리터러시 역량을 골고루 갖추지 못한다면 결국 '소수의 이익에 복무하는 리터러시'가 되고 말 것이라 지적합니다.

'약속된 미래'의 부재

안타깝지만 과거 복기도 미래 예측도 우리가 어떤 리터러시를 추구해야 할지 명확한 답을 주진 못합니다. 이상적인 과거는 없었고 약속된 미래 또한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입니다.

기술과 산업의 최전선에 있던 토머스 에디슨은 "10년 안에, 학교에서 책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고, 모든 과목을 영상으로 가르칠 수 있을 것"이라 예측했습니다. 하지만 100년을 훌쩍 넘은 지금도 영상이 책을 온전히 대체하진 못하고 있습니다.

마빈 민스키는 1970년 잡지 '라이프'와의 인터뷰에서 "3년에서 8년 뒤에는 평균적인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가진 기계가 등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합니다. 그는 컴퓨터과학자이자 인지과학자이며 MIT의 인공지능 랩을 공동으로 창립한 인물로 당시 그 누구보다 AI에 대한 이해가 깊은 사람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50년도 넘는 지금에서야 chatGPT와 같은 '식별기' 이상의 기능을 하는 인공지능이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그의 예측만큼의 지능을 가지진 못한 것 같습니다.

현재 기술의 최전선에 있는 전문가들은 AI의 미래를 낙관하는 Boomer와 비관하는 Doomer로 나뉩니다. 시대의 천재들조차 서로 다른 미래를 이야기하는 지금, '약속된 미래'가 없듯이 '보장된 준비' 또한 없는 것 같습니다.

계기로서의 인공지능

한 가지 확실히 아는 것은 지금 바로 여기에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떤 삶을 알아내느냐가, 하루하루를 어떻게 읽어내고 기록하느냐가, 어떤 이야기를 건내며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느냐가, 어떤 삶의 가치를 지켜 내느냐가 시대를 선언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일보다 더욱 긴급하며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저자는 과거를 복기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우리에게 명확한 답을 내려주지 못한다고 지적하며, 현재에 어떻게 살아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리터러시는 거창한 명분이나 특정한 기술의 활용이 아닌 각자의 삶 속에서 그 의미와 가치를 갖는다는 것, 미래는 언제나 현재의 축적이라는 사실, 그리하여 인공지능과 함께하는 미래는 수많은 사람의 일상적 실천이 쌓여 만들어지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AI가 만들어내는 텍스트, 이미지, 오디오, 비디오는 지금까지 인류가 쌓아 올린 데이터를 학습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나를 비롯한 친구와 동료, 스승과 제자, 부모와 조상의 삶이 담겼습니다. AI와의 미래는 우리가 함께 만들어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인공지능이 읽고 쓰는데 나는 무엇을 하나?"가 아니라 '읽고 쓰는 인공지능이 등장한 지금, 나 자신의 읽기와 쓰기를 어떻게 재발명할 것인가?'가 되어야 합니다.

AI가 기존의 내 역할을 대체하고 나의 쓸모가 사라질까 봐 걱정됩니다. 한편, 저자는 AI의 등장이 기존에 우리가 하던 일의 본질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방식으로 관계 맺는 창조의 계기가 될 수 있음을 조명합니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밝힌 이 책의 의도를 통해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이 책은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타인에 의해 선언된 시대에 규정당하기보다 우리가 희망하는 시대를 직조하는 읽기와 쓰기의 가능성을 탐구합니다. 저 먼 곳의 누군가에 의해 정의되지 않는, 바로 여기에서 우리 스스로 정의하는 인공지능을 고민합니다. 시대의 흐름을 타는 일과 그것을 거스르는 일을 양극단 창조적 리터러시 실천을 상상합니다. 견고한 구조에 포섭당하지 않고 '틈새'에서 당신과 나를 위한 읽기-쓰기의 가능성을 탐구합니다. 그리하여 인공지능을 우리 삶을 지배하는 기술이 아니라 우리 삶의 다양한 측면을 새롭게 조명하고 창의적으로 재정의하며 더 나은 일상과 관계를 이끄는 계기로 만들어갑니다.

🦒 당신이 어떤 사람이던 좋아요. 진실한 모습에 다가서는, 이태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