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래의 우당탕탕 원서 읽기 도전기

원서 읽는 멋쟁이가 되고 싶어

"영어 원서를 태연하게 읽는 뇌섹남이 되고 싶다아."

안녕하세요, 여러분! 혹시 어릴 때부터 이런 대단한(?) 로망 하나쯤 품고 계시지 않나요? 저는 특히 그랬어요. 세상의 대부분 지식이 영어와 일본어로 쓰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 순간부터, 원서를 자유롭게 읽는 쿨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총, 균, 쇠'를 영어로 읽는 멋쟁이? '노르웨이의 숲'을 일본어 원서로 읽는 지성인? 네, 바로 제가 되고 싶었던 사람입니다. 근데 말이죠...

원서 읽기 실패, 실패, 시무룩: "이게 바로 현실의 벽이란 거야..."

10대 중반, 저는 제 영어 실력에 자신이 있던 병아리였어요! 다른 과목은 시궁창에 있었지만 영어만은 늘 만점에 가까웠거든요. 물론 화려한 성적 뒤에는 교과서를 한 글자도 안틀리게 외우게 한 아버지의 몽둥이가 있었지만요. 이렇게 자신이 팡팡 넘쳤을 때, 저는 서점에서 반지의 제왕 소설의 프리퀄인 '호빗'의 원서를 당당하게 구매했습니다. 계산대에 책을 올려놓고 돈을 낼 때, 제 콧대는 한없이 높아졌습니다. 내가 이렇게 멋진 사람이 되다니!

집에 돌아와서 책을 펼치기 전에 제 마음 속에는 아래와 같은 야심찬 계획이 있었답니다.

1. 첫 페이지부터 차근차근 읽기
2. 모르는 단어는 사전 찾기
3. 한 달 안에 다 읽기

종이로 된 영한 사전을 준비하고 첫 페이지를 펼쳤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1. 첫 문장부터 막힘
2. 한 페이지에 사전 20번 뒤적거림
3. 한 시간 동안 두 페이지 읽음
4. 포기

네. 1997년에 구매한 호빗은 결국 40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 읽지 못했답니다. 첫 페이지의 충격이 너무 컸어요. 알량한 자존심에 부모님 앞에서 읽는 척을 하며 칭찬 받다가, 결국 10년 가까이 책장에 꽂혀 있다가 사라져버렸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오랜만에 책 내용을 봤는데 이젠 읽을만하네요!!)

그리고 그 이후에도 몇 년에 한 번씩 원서 읽기에 도전했어요. 하지만 매번 같은 방식으로 무너졌습니다. 그 사이 일본어 능력 시험 1급을 따게 되면서 일어 원서도 위시리스트에 올라왔어요. 하지만 또 같은 패턴에 무너지곤 했습니다.

이런 짓이 10년 넘게 반복됐어요. 해마다 "올해는 진짜 원서 마스터 해보자!"라며 다짐했지만, 결과는 언제나 같았죠. 단어 시험에서는 100점도 맞고, 문법도 대충 이해해서 관련 시험은 잘 봤지만, 실제 책을 읽는 건... 음, 마치 물에서 뜨기만 배우고 태평양 횡단에 도전하는 느낌이었달까요?

여러번의 원서 읽기 실패 이후, 제 실패의 원인을 일단 파악해보았습니다.

1. 너무 많은 모르는 단어들: "아는 단어보다 모르는 단어가 더 많으면 그건 책이 아니라 암호문이다." 제가 만든 명언입니다. 한 페이지에 열 단어 이상 모르면 그냥 외계어 해독하는 기분이었죠.
2. 복잡한 문장 구조: 특히 문학작품은 비유와 은유, 복잡한 문장으로 가득했어요. "The sun, having set behind the mountains, cast long shadows that danced like ephemeral spirits across the valley floor." 이런 문장 앞에서 저는 그저 "해가... 산... 뒤에... 음... 다음 문장 넘어가자..."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습니다.

그런데 몇 번의 실패가 추가되자, 근본적인 원인이 드러나기 시작했어요.

1. 느린 읽기 속도: 한국어 책은 후다닥 읽어 내려가는데, 영어 책은 달팽이보다 느렸어요. 한 문장 읽는 데 너무 오래 걸려 전체 흐름을 놓치기 일쑤였습니다. 책 한 권을 다 읽으려면 지구가 한 바퀴 더 돌아야 할 것 같았어요.
2. 조급한 마음:사실 이게 가장 큰 문제였어요. 책을 읽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 답답했거든요. 한국어로는 후루룩 읽어내려갈 수 있는 내용인데, 영어로는 한 페이지 읽는데 30분이 걸리니 진도가 안 나가는 거예요. "이 책 언제 다 읽지?"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고,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사전을 뒤적이는 과정이 흐름을 끊었죠. 그러다 보니 이야기에 몰입하기보다는 '얼마나 읽었지?'만 자꾸 확인하게 되었어요. 잘 하고 싶은 마음과 더 빨리 읽고 싶은 욕구가 오히려 집중력을 흐트러뜨렸죠. 처음부터 완벽하게 이해하려는 욕심도 컸고요. 결국 조급함이 즐거움을 앗아가고, 즐거움이 없으니 지속하기 어려웠던 거예요.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다: "아, 맞다! 나 아직 30년은 더 살 수 있잖아?"

그러던 어느 날, 40대에 들어서면서 깊은(?)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졌어요. 어느날 책상에 멍하니 앉아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깐, 내가 이제 40살이 됐는데... 80살까지는 살거 같으니까... 아직 30년 이상의 시간이 남아있잖아? 이거 생각보다 꽤 긴데?"

그 순간 뇌리를 스치는 깨달음! 저에게 시간은 충분했던 거예요. 조급함을 부리지 않고 그냥 천천히 한권씩 읽어도 언젠간 익숙해질거라는 걸 알게 되었던거에요.

그래서 일단 결심했어요. 한국 저자의 책이 아니라면 무조건 원서로 읽기로. 설령 한 페이지에 10분이 걸리더라도, 한 권을 읽는 데 한 달이 걸리더라도 상관없다고 말이에요. "난 거북이처럼 천천히 가겠어. 하지만 결국 언젠간 편하게 읽게 될거야. 내 삶은 아직 한참 남아있을테니까."

놀랍게도 이 단순한 마음가짐의 변화가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천천히 읽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니 조급함이 사라졌고, 문장을 이해하는 데 집중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문학보다는 비문학 책으로 시작하니 문장을 이해하기도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예를 들어, 셜록 홈즈 같은 소설 대신 심리학이나 경영 관련 책을 선택했더니 훨씬 읽기 편했어요. 문학은 "The cryptic smile that played upon her lips spoke volumes of unspoken truths" 같은 문장으로 가득하지만, 비문학은 "Research shows that 99.9999999% of people prefer mint-chocolate over vanilla" 같은 쉬운 문장이 많았거든요. 뭐, 문장이 쉽다고 내용이 쉽다는 건 아니지만요! 😅

그렇게 영어와 일본어 원서를 제대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한 권 읽는 데 한 달이 걸렸지만, 점점 속도가 빨라졌어요. 그리고 놀랍게도, 읽다 보니 재미있더라고요! 번역서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저자의 진짜 목소리, 유머, 말투가 그대로 전해져오니 느낌이 새로웠어요.

단어와 문장의 장벽: AI가 장벽을 박살냅니다

원서를 읽다 보면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이야?'라는 생각이 드는 어려운 문장을 만나곤 하죠. 예전에는(2020년 이전) 이런 상황에서 세 가지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1. 사전을 뒤적거리며 단어 하나하나 찾기(지루함 MAX)
2. 문맥으로 대충 추측하기(오독 MAX)
3. 포기하기(패배감 MAX)

하지만! 세상에 마상에 ChatGPT와 DeepL 같은 AI 도구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건 마치 피쳐폰으로 흑백 게임하다가 아이폰을 얻은 기분이었어요!

이전의 번역 도구들은... 음, 솔직히 말해서 예쁜 쓰레기였죠. "Time flies like an arrow"를 "시간 파리들은 화살을 좋아한다"로 번역하는 수준이었으니까요. 하지만 AI 기반의 번역은 문맥까지 고려해서 번역을 해주니, 훨씬 더 이해하기 쉬웠어요.

그래서 이제는 모르는 문장이 나오면:

1. AI에 문장을 복사해 번역을 확인합니다. "오, 그런 뜻이었구나!"
2. 번역을 보고 원문으로 돌아가 다시 읽습니다. "아하, 이렇게 한글로 표현하는구나!"
3.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표현과 단어를 익히게 됩니다. "다음에 이런 문장 나오면 바로 알아볼 수 있겠지?"

이런 흐름을 활용하면서 저는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 완전히 이주하게 되었어요. 모르는 단어를 드래그 한 번으로 사전 검색,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은 복사해서 AI에게 물어보기, 그리고 하이라이트한 내용은 자동으로 정리까지! 종이책을 이용하면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가능해졌죠.
(deepL, 구글 번역, 클로드 적극적으로 활용하세요. 두 번, 아니 세 번 활용하세요!)

읽기 속도의 한계 돌파하기: RSVP, 이제 1분 동안 단어 300개가 지나가요~

원서 읽기가 점점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고민이 있었어요. 바로 읽는 속도였죠. 한국어 책은 후다닥 읽는데, 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속도가 안 나는 거예요. 마치 고속도로에서 경운기를 타고 가는 기분이랄까요? 다른 차들은 휙휙 지나가는데 나만 털털털털 거리며 가는 느낌이었죠.

어느 날 샤워하면서 깨달음을 얻습니다(왜인지 좋은 아이디어는 항상 샤워 중에 떠오릅니다).
"아하! 외국어로 된 글을 읽을 때 항상 머릿속에서 소리를 내며 읽고 있잖아!"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어를 읽을 때는 글자를 보는 순간 바로 의미가 이해되는데, 영어나 일본어를 읽을 때는 머릿속에서 '프로눈시에이션(pronunciation)'이라고 발음한 다음에야 '발음'이라는 의미가 떠오르는 거였어요. 이 과정이 속도를 엄청나게 늦추고 있었던 거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RSVP(Rapid Serial Visual Presentation)라는 방식을 시도해 봤습니다. 뭔지 모르시겠다고요? 간단해요. 한 번에 한 단어씩만 화면에 빠르게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마치 이런 식으로요:

"나는" → "밥을" → "먹었다" (위의 유튜브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이렇게 단어가 빠르게 바뀌면 머릿속에서 발음할 시간이 없어 바로 의미만 받아들이게 되는 거죠. 처음에는 "이게 뭐야, 정신없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점점 익숙해지더라고요.

Outread라는 앱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이 앱을 사용하면, 내가 가지고 있는 텍스트를 RSVP 방식으로, 원하는 속도로 읽을 수 있답니다. 처음에는 적응이 어려웠지만, 점차 익숙해지면서 분당 300단어까지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이 불과 1달도 안걸린거 같아요.

분당 300단어? 그게 빠른 거야, 느린 거야? 하시는 분들 계실텐데요. 궁금하시죠? 절대 느린 속도가 아니에요! 원어민도 평균 읽기 속도가 보통 분당 200-300단어 정도니까요. 물론 정말 빨리 읽는 사람들은 분당 500-600단어까지 읽기도 하지만요. 그런건 다음 생애에 도전해보기로 했답니다. 🏃‍♂️💨

그런데 이 과정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사실 제 원서 읽기 속도는 이미 몇 년간의 경험 덕분에 꽤 빨라진 상태였다는 점이었습니다. 단지 한국어 책을 읽는 속도가 워낙 빨라서(분당 500단어 이상) 상대적으로 느리다고 느꼈던 것뿐이었어요. 이건 마치 올림픽 달리기 선수들을 보며 나는 너무 느린 사람이라고 한단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던 거죠. 😅

이제는 나도 원서 읽는 멋쟁이

기적처럼, 이제 저는 영어와 일본어 원서를 꽤나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물론 아직도 모르는 단어가 나오고, 가끔은 복잡한 문장에 막히기도 하지만, 그래도 전체적인 흐름을 즐기면서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좋은 점은 번역서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저자의 생생한 목소리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미국 작가의 유머는 번역하면 반 이상 증발해버리는데, 원서로 읽으면 "아, 이래서 사람들이 이 작가를 좋아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특히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The alchemist)를 한국어 버전으로 읽어보셨다면 꼭 꼭 영어로 읽어보세요. 문체가 완전히 다르다 못해 책이 달라 보입니다!

또한, 새로운 정보를 빠르게 접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외국 서적이 번역되어 한국에 들어오려면 보통 1년은 기다려야 하잖아요. 하지만 이제는 출간되자마자 바로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뉴스레터에서 종종 소개 드리는 책들이 바로 한국에서 아직 번역 안된 도서들이랍니다. 지식의 최전선에 서 있는 기분이랄까요?

야나두?

10년이 넘는 실패와 좌절 끝에 마침내 단순하지만 강력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원서 읽기는 천재나 언어 영재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관심과 끈기만 있다면 누구나 가능하다는 사실이었어요. (힘드건 확실히 맞습니다. 맞구요.)

시간은 우리의 편입니다.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현대 기술의 도움을 받아 한 권씩 읽다 보면 누구나 원서 읽기가 익숙해질 수 있어요. 그리고 그 과정이 생각보다 즐겁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자, 이제 여러분에게 몇 가지 팁을 드릴게요:

1. 조급해하지 마세요: 천천히 읽어도 괜찮아요. 빨리 읽는 것보다 즐겁게 읽는 게 중요합니다.
2. 비문학부터 시작하세요: 소설보다는 자기계발서, 경영서 같은 비문학이 문장이 더 단순해서 입문용으로 좋아요.
3. 전자책을 활용하세요: AI 번역 도구와 함께라면 학습 효과가 배가 되니까요.
4. RSVP 방식을 시도해보세요: 머릿속 발음 과정을 건너뛰어 읽기 속도를 높일 수 있어요.
5. 포기하지 마세요: 일단 한 권을 끝내봅시다. 그러면 두 번째 책은 더 쉬워질 거예요.

원서를 읽으면 정보를 직접적으로 얻을 수 있고, 번역에서 사라질 수 있는 저자의 뉘앙스도 그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언어 실력도 자연스럽게 향상되는 보너스까지!

여러분도 오랫동안 원서 읽기를 꿈꿨다면, 지금 바로 시작해 보세요.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해도, 천천히 읽어도 괜찮습니다. 그 과정 자체가 성장이니까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쉬워질 테고, 어느 순간 여러분도 원서를 자연스럽게 읽는 모습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그리고 몇 년 후, 카페에서 멋지게 영어 원서를 읽고 있는 여러분의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옆자리 사람이 "와, 영어 원서를 읽으시네요. 대단하세요!"라고 말하면 여러분은 쿨하게 대꾸하겠죠.

"훗."

📿 여러분들이 가진 구슬을 엮어 삶의 가치를 만들어 드립니다, 타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