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9호(2025.11.10.)

이 순간의 감사함을 느껴보세요

저는 기억합니다. 거실 소파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던 그 오후들을요. 몸이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거든요. 침대에서 소파까지 이동하는 것조차 하루의 큰 사건이었던 시절이었어요.

오후 4시쯤 되면 습관처럼 TV 리모컨에 손이 갔습니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우연히 멈춘 한 프로그램. 화면에는 70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어느 집의 거실을 걸어 들어가고 있었어요. 햇살이 쏟아지는 큰 창문 앞에 놓인 목재 의자 하나. 남자는 그 의자에 천천히 앉더니 창밖을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한숨처럼, 정말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로 말했어요.

"아리가타이네(ありがたいね)."

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니. 그의 얼굴에 번진 표정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의 것이었어요. 그 순간, 소파에 가라앉아 있던 제 마음 어딘가가 살짝 들썩였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매일 오후 4시를 기다렸습니다. 그 프로그램, 와타나베의 건물탐방을 보기 위해서요.

와타나베 아저씨가 매번 입에 담는 "아리가타이네(ありがたいね)"라는 말은 '아리가토(ありがとう)'의 어원이에요. 한자로는 '有難い', 즉 '어려움이 있다', '드물고 귀하다'는 뜻이죠. 인간으로 태어나고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귀한 일인지를 담은 불교적 표현입니다. 이 '귀함'이 '고마움'으로 연결되어 지금의 감사 표현이 된 거예요.

그러니까 아저씨가 의자에 앉아 "아리가타이네"라고 말할 때, 그건 단순히 "좋네"가 아니었어요. "이 순간이 얼마나 드물고 귀한 일인가"를 느끼고 있었던 거죠.

1989년부터 시작된 이 프로그램에서 와타나베 아저씨는 일본 전역의 개성 넘치는 단독 주택을 찾아다닙니다. 좁은 땅에 3층으로 올린 집, 나무 한 그루를 살리기 위해 집을 둥글게 지은 집, 중정을 중심으로 빛이 쏟아지도록 설계한 집. 건축가의 아이디어와 건축주의 삶이 만나 태어난 공간들이었어요.

하지만 제가 이 프로그램에 빠진 이유는 단순히 예쁜 집이 아니었습니다. 와타나베 아츠시라는 사람 때문이었죠.

그의 방식은 특이합니다. 리허설도 없고, 사전 답사도 없어요. 카메라가 돌아가면 그제야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요. 건축주와 나누는 대화도, 집을 둘러보며 느끼는 감정도, 마지막 1분간의 총평도 모두 즉흥입니다. 대본이라곤 한 줄도 없거든요.

그런데 신기한 건, 37년간 1,800채가 넘는 집을 방문했는데도 단 한 번도 집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적이 없다는 거예요. 어떤 집을 가든 그 안에서 좋은 점을 찾아내요.

창밖으로 나무 한 그루가 보이면 "이 경치! 아리가타이네~" 하고 감탄하고, 천장이 높은 거실에 들어서면 "하아~. 심호흡하고 싶어지는구나!" 하며 두 팔을 벌립니다. 계단 손잡이 하나를 만지작거리며 "오오, 이 촉감! 나무가 살아있어요" 하고 행복해하죠.

보다 보면 알게 돼요. 그의 감탄이 과장이 아니라는 걸요. 정말로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게 고스란히 전해지거든요. 그는 진짜로 의자 하나, 창문 하나, 햇살 한 줄기에도 감사하는 사람이에요.

방송을 통해 볼 수 있었던 예쁜 집들  

궁금했어요. 도대체 이 사람은 어떻게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있는 걸까?

나중에 알게 됐습니다. 와타나베 아저씨는 인터뷰를 통해 본인이 처음부터 이런 사람은 아니었다고 해요.

1960년, 13살의 와타나베는 후지TV 드라마 '니안짱'으로 데뷔했습니다. 어릴 적 이바라키 사투리를 고치려고 들어간 아동극단에서 우연히 시작된 연기 생활이었죠.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며 잠시 연기를 쉬었어요.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던 거예요.

그런데 인생이 그를 가만 두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투자 사기를 당했대요. 순식간에 생긴 수천만 엔의 빚. 어머니가 와타나베를 연대보증인으로 세운 바람에 하루아침에 빚더미에 앉게 됐죠. 대학을 중퇴하고 다시 연기 생활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어요. 돈을 벌기 위해서였죠.

무려 15년이었습니다.

드라마 두 편과 무대를 동시에 소화하며 하루 3-4시간만 잠을 자는 생활. 벌어들인 돈은 모두 빚 갚는 데 써야 했어요. 당시를 회상하며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말로 표현조차 할 수 없었어요."

그런데 흥미로운 게 있어요. 그는 그 시절을 이렇게도 말하거든요.

"그래서 그 속에 꿈을 가지려고 했어요. 현실이 너무 버거우니까 연기 세계에 완전히 몰입했죠. 그게 버틸 수 있는 힘이었어요."

현실에서 눌러 담았던 감정이 연기에서 폭발했고, 사람들은 그의 연기를 '박진감 넘친다'고 칭찬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고통스러운 경험도 양분이 됩니다."

빚을 다 갚았을 때 그의 나이는 42세였어요. 20여 년 만에 가족과 평온하게 살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겨우 마련했죠. 그때 TV 아사히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건축 탐방 프로그램을 해보지 않겠냐고요.

사실 와타나베는 어릴 적부터 건축을 좋아했어요. 생활에 쫓기던 시절에도 소파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건축 잡지를 보는 짧은 시간이 유일한 위안이었죠. 하지만 그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프로듀서도 몰랐고요. 그래서 와타나베는 이 일을 "신이 준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집을 방문할 때마다, 작은 것을 발견할 때마다 감사함을 표현하죠.

긴 터널을 지나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감사의 눈. 그게 프로그램 곳곳에 배어 있는 거예요.

와타나베 아저씨는 기나긴 고난을 통해 감사함을 깨닫게 되었대요.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어요.

아프기 전 저는 제법 자신만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대학도 괜찮은 곳에 붙었고, 취업도 원하던 회사에 했고, 회사에서도 괜찮은 평가를 받았거든요. 당연히 그게 다 제 능력이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 붙었지.' '내가 잘해서 취업했지.' '내 실력이 좋으니까 인정받는 거지.'

그런데 아프고 나니 달라지더라고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천둥벌거숭이가 된 기분이었어요. 제가 가진 모든 게 순식간에 무용지물이 됐거든요. 경력도, 학벌도, 지식도 아픈 몸을 일으켜 세우는 데는 아무 도움이 안 됐어요.

그때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대학 입시. 정말 제 힘만으로 했을까요? 아니에요. 부모님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셨고,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이 정보를 공유해줬고, 학교와 학원 선생님들이 관심을 가져주셨어요. 제가 한 건 그 안에서 책을 펼친 것뿐이었죠.

회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것도요. 호의적인 팀장님과 본부장님이 기회를 주셨고, 동료들이 늘 도와줬기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제가 잘한 게 아니라 좋은 사람들 덕분이었던 거예요.

제가 가진 모든 환경과 성취는 누군가가 마련해준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아프고 난 다음에도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은 저를 챙겨주고 걱정해줬어요. 제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는데도요.

그걸 깨달은 다음부터는 세상이 다르게 보였어요.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도, 바람에 흔들리는 잡초도, 아침에 뜨는 해도, 모든 게 감사하더라고요.

와타나베 아츠시가 의자에 앉아 "아리가타이네"라고 말하던 그 마음을 그제야 이해하게 됐어요.

아픈 친구 심심하지 말라고 놀아줬던 친구들...

와타나베의 건물 탐방이 끝나면 저의 일상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시계를 보니 오후 5시. 마트에 가서 저녁거리를 사야 할 시간이에요. 몸을 일으키는 데만 한참이 걸렸어요. 소파에서 일어나 현관까지 걸어가는 게 그날의 첫 번째 미션이었죠. 태양빛이 오렌지색으로 물들기 시작할 때요.

마트에서는 천천히 걸었어요. 아직 오래 서 있기가 힘들었거든요. 장바구니에 애호박, 차돌박이, 두부를 담았습니다. '오늘은 와이프가 좋아하는 얼큰한 차돌된장찌개를 끓여야지'라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조금 나아지는 기분이었어요.

칼을 들고 애호박과 두부를 썰었어요. 예전엔 5분이면 끝낼 일이 두 배는 넘게 걸렸지만 괜찮았어요. 손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는 것, 그게 감사했거든요.

냄비에서 국물이 보글보글 끓어오를 때쯤이면 야근을 마치고 아내가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리고 도란도란 늦은 저녁을 먹었죠.

저녁 상차림이 회복의 루틴이라고 부르기엔 거창했어요. 그냥 제가 쓸모 있게 느껴지고 싶었던 거예요. 집 청소를 하고, 밥을 짓고, 아내를 기다리는 것.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제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이었죠.

그 시간 동안 와타나베 아저씨의 방송은 제게 버팀목이 되어주었습니다.

화면 속에는 매일 새로운 집들이 나왔어요. 햇살이 쏟아지는 거실, 나무가 보이는 서재, 아이들이 뛰어노는 넓은 마당. 저는 소파에 기대 그 풍경들을 바라보며 생각했어요. '언젠가 나도 저런 곳에서 살 수 있을까?'

하지만 진짜 위로는 집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와타나베가 모든 것에 감사하며 행복해하는 그 태도였어요. 의자 하나에도, 창문 하나에도, 햇살 한 줄기에도 "아리가타이"라고 말하는 그 모습이요.

그걸 보면서 깨달았어요. 삶은 비참하게 바라보면 비참해지고, 좋게 바라보면 좋아진다는 것을요.

천장만 보며 누워있을 때는 모든 게 절망적으로 보였어요. 하지만 와타나베처럼 감사하는 눈으로 보기 시작하니 달라지더라고요.

소파에 누울 수 있다는 것. TV를 볼 수 있다는 것. 집에 있을 수 있다는 것. 저녁을 준비할 수 있을 만큼 회복되었다는 것.

모든 게 감사했습니다.

별볼일 없는 저녁식사를 맛있게 먹어주는 와이프를 보는게 낙이었어요.  

지금 제가 운영자분들과 함께하는 더배러에는 이 감사한 마음이 들어있습니다.

투병 중에 깨달았거든요. 제가 가진 모든 것이 다른 사람들 덕분이라는 걸요. 그렇다면 이제 제가 누군가의 도움이 되어줄 차례라고 생각했어요.

더배러는 서로의 어깨를 내어주어 더 넓은 세상을 열어주는 곳입니다. 베리즈님들이 각자의 재능과 시간을 내어 서로를 돕고, 함께 성장하는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거든요. 삶과 사람에 대한 감사함이 분명 바탕에 깔려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저는 늘 더배러에 계신 분들이 성장하는 걸 응원하고, 보여주시는 멋진 모습에 박수를 치고 있지요.

삶에 대한 감사함, 사람에 대한 감사함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에요. 온기를 넘어 서로를 지지해주는 기반이 되거든요.

와타나베처럼 좋아하는 의자에 앉을 때 감사함을 느끼듯이, 저도 계속 그렇게 살고 싶어요. 작은 것에도 "아리가타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요.

혹시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가요? 모든 것이 내 탓 같고, 내가 부족한 것 같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나요?

와타나베 아저씨는 20여년간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지만, 그 경험이 양분이 되어 지금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사를 가르쳐주고 있어요.

저도 천둥벌거숭이가 되어 모든 걸 잃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때 비로소 제가 가진 것들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깨달았어요.

시련은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감사하는 눈을 열어주기도 하지요.

그러니 오늘 하루는 삶의 작은 부분에 눈을 멈춰보면 어떨까요? 의자에 앉았을 때, 창밖을 바라볼 때,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실 때.

그리고 와타나베 아저씨처럼 마음속으로 말해보는 거예요.

"아리가타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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