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를 향한 의지

가장 지혜로운 자

어느 날 소크라테스의 친구인 카이레폰은 델포이 신전에 찾아가 무녀에게 물었습니다.

친구: "소크라테스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이 있나요?"

무녀: "아니.”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소크라테스는 신탁을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테네 내에서 지혜롭기로 소문난 사람들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는 정치인과 시인, 장인 등 다양한 분야에 전문가들을 만났고, 대화를 통해 그들의 지혜를 시험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명성과는 달리 그들은 소크라테스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무지가 드러나자, 소크라테스가 자신을 능욕한다며 화를 내기까지 했습니다. 이 과정에 소크라테스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면에서 저 들보다 나은 것 같군.”

자신이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보다 그를 더 지혜롭게 만든다는 통찰을 얻었지요.

안다는 착각

우리는 종종 '알고 있다'고 믿는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지식수준을 과대평가하는 현상을 '지식의 착각' '설명 깊이의 착각(the illusion of explanatory depth)'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어떤 주제를 설명할 수 있다고 자신할 때, 실상은 그 주제의 근본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에 자주 빠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개념은 2002년의 한 연구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미 예일대의 레오니드 로젠블릿과 프랭크 케일의 연구에서는 참가자들이 자신의 지식수준을 매우 낙관적으로 보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실험 참가자들은 자신들이 설명을 길게 쓸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가장 기본적인 핵심조차 대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 연구 이후로 ‘지식의 착각’에 대한 연구가 이어졌습니다.

매튜 피셔 미 텍사스주 서던 메소디스트대의 마케팅학과 조교수는 대학교 졸업생들이 학업을 마친 뒤에도 자신의 전공과목에 대한 지식수준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을 발견했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전공 지식은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잊히기 마련인데, 참가자들은 한창 공부에 매진했을 때만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죠.

또한 피셔 교수는 추가적인 연구를 통해 인터넷에서 검색할 수 있는 지식을 자신이 기억하는 지식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이와 관련된 현상을 ‘기술 습득에 대한 착각’이라고 부릅니다. 타인을 관찰한 것만으로 얻은 지식을 자신이 잘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다고 믿는 경향입니다.

미 노스웨스턴대에서 경영 및 마케팅 학과의 연구원인 마이클 카다스는 참가자들에게 다트 던지는 법, 문워크 춤을 추는 법 등의 다양한 기술을 설명한 영상을 최대 20회까지 반복해서 시청하도록 요청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영상의 기술을 시도했을 때 얼마나 잘할 수 있을지 스스로 평가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예상과 같이 대부분 사람은 영상 시청만으로도 기술 습득에 도움이 됐을 거라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시청 횟수가 많아질수록 자신감은 더욱 커졌죠. 하지만 사람들이 실제로 영상으로 배운 기술을 시도해 보니 제대로 되지 못했죠.

결국 우리는 어떤 정보를 반복적으로 접했을 때, 그것을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러한 착각은 업무나 일상에서 문제를 일으키곤 합니다. 스스로를 과대평가하여 자신 역량 이상의 일을 맡아 프로젝트에 지장을 준다거나, 업무를 적절히 위임하지 못한다거나, 동료의 기여를 충분히 인정하지 못해 인간관계에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함께한 가족, 친구 또는 동료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착각일 수 있습니다. 나의 섣부른 판단에서 나오는 말이나 태도들이 그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또한, 인생 경험이 풍부하거나 특정 분야에서 오랜 경력을 쌓았다고 해서 항상 젊은 세대나 경험이 덜한 이들보다 더 많이 안다고 가정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이는 타인에 대한 지식을 과소평가하고 자신의 지식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가 심각한 이유는 이런 지적 오만으로 발생하는 문제를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나의 능력이 얼마나 타인에게 의존적인지 깨닫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진정한 지식

방법은 꽤 쉽습니다. 스스로를 시험대에 올려보면 됩니다. 예를 들어 내가 이해했다고 생각한 것을 자세히 설명해 봅니다. 만약 내가 잘 알고 있다면 설명하기 쉬울 것이고, 반대로 잘 모른다면 횡설수설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지식과 실제 알고 있는 지식의 간극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전문가 또는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사람과 대화하며 내가 제대로 된 가정을 내리고 있는지 물을 수 있습니다.

아울러 지식에 대한 자신감을 부풀릴 수 있는 검색 습관에 대해 검토해 볼 수 있습니다. 인터넷 또는 나의 지식관리 시스템에 검색하기 전에, 최선을 다해 기억을 떠올리려 노력합니다. 핵심은 의식적으로 지식의 공백을 인식하며 내 기억을 평가하는 것입니다.

위 방법들을 위한 중요한 태도가 있습니다. 바로 ‘좌절하고자 하는 의지’ 입니다. ‘의지’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내 자신의 무지를 인정할 때 생기는 불편한 감정을 이겨내야 하며, 그럼에도 기꺼이 도전하고 부딪혀야 하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으로 ‘지적 미덕’, ‘겸손함’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미움받지 않기 위해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진정한 앎에 다가서기 위한 태도이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식과 이성의 너머

저는 지난 뉴스레터에서 지식과 이성의 너머(https://thebetter.today/posts/49268535?utm_source=manual)라는 제목의 글을 썼습니다. 그 글에서 우리의 지식과 이성이라 불리는 도구의 한계를 지적했습니다. 우리의 앎이 개인적 신념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절대적인 진리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는 주장은 이 글의 주제인 '진정한 지식'과 상반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러나 실제로는 이 글의 핵심 메시지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절대적인 진리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할지라도, 우리는 그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할 수 있습니다. 이 노력이란 우리의 무지를 인정하고 그 공백을 메우려는 과정이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가져야 할 배움의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자신이나 타인의 주장을 과대평가하는 문제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이제는 반대로 자신의 이해를 과소평가하지 않으며, 겸손함을 통해 진정한 지식에 가까워질 방법을 모색해 봅시다.

감사와 선순환

자기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과 겸손 사이의 세심한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나친 겸손이나 자신에 대한 무분별한 과소평가는 가면 증후군으로 이어져 스스로를 위축시키고 타인으로부터의 적절한 인정을 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 대신에 저는 감사함을 떠올려 볼 것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지식을 탐구하고 정교하게 다듬어준 사람들에 대하여, 그 지식이 내게 닿았고, 지금 내게 배울 여유가 있음에 대하여 감사함을 느껴보는 겁니다.

저는 감사한 마음이 들 때 베풀고 싶어지더군요. 내게 유용한 지식을 다른 사람들도 경험시켜 주고 싶어요. 하루라도 빨리, 좀 더 쉽게 말이죠. 그래서 더 공부하고 쉬운 설명을 위해 고민합니다. 이러한 과정에 저의 지식이 더욱 풍부해집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인정도 받고요. 이러한 선순환은 저를 더욱 배움의 길로 인도합니다.

배움에서 감사함을 찾고, 그것을 동력 삼아 타인의 삶에 기여해보는 것은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