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6호 (2024.05.09)

가장 맛있는 딸기 이야기 들어보실래요?

딸기

"어, 딸기네!"

"아, 딸기가 있어?"

그가 어려서부터 가족과 자주 가던 가게에서

좋아하는 야채 곱창을 저녁으로 맛있게 먹고 나와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해가 져서 어수룩한 어둠이 내린 시장 골목을 지나던 차였는데,

골목 중간쯤 과일을 팔고 있는 좌판의 파라솔에 달린 전구 불빛에 딸기가 보였다.

겨울이 끝나가는 무렵부터 따뜻한 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히는 봄의 계절에

좋은 것을 하나 꼽으라면, 난 단연 딸기를 꼽을 거다.

요즘은 과일의 철이 따로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비닐하우스에서 인위적으로 재배한 것보다는

자연의 섭리에 맞춰, 때에 따라 수확된 과일에 더 마음이 가는 게 사실이다.

마트에 딸기가 보이기 시작하면,

'아, 겨울이 끝나가고 봄이 오는구나.'라며 계절의 변화를 인지하고

빨갛게 익은, 부드럽고 연한 딸기 과육을 한입 베물어 먹으면서 계절의 변화를 체감한다.

"잠깐, 차 세워봐."

"응? 왜? 여기 세울 공간이 되나?

과일 좌판을 조금 지나쳐, 골목 한편에 차를 세우고 비상깜빡이를 켰다.

"잠깐 있어, 다녀올게."

그리곤 차에서 내려 과일 좌판으로 걸어가는 그의 모습이 사이드미러에 보인다.

잠시 후, 돌아온 그가 차량 뒷좌석 문을 열고 좌석에 검은 봉지를 내려놓는다.

"딸기를 샀어?"

"응, 딸기를 좋아하는 어느 분이 계셔서."

라며, 무심히 툭 말하는 그의 마음이 고. 맙. 다.

별 뜻 없이 그냥 눈에 보여 이야기 한 딸기였는데,

그 말을 마음으로 담아 듣고, 지나쳐온 과일 좌판까지 걸어가서 사 온 딸기가

얼마나 맛있을지 집에 가는 길 내내 마음이 설레었다.

"속상해."

진짜, 너무 속이 상했다.

그가 생각해 준 마음과 수고로움을 생각하니 더욱 그랬다.

딸기가 많이 상해 있었다.

케이스 밑단에 있는 것 중에는 많이 무르고 곪은 상태의 것들도 꽤 있었다.

"자기가, 애써 걸어가서 사 온 건데... 딸기가 상태가 많이 안 좋아."

속상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잔뜩 우울한 목소리로 내가 이야기했다.

"저런, 아저씨가 살펴보고 건네주신 걸 받은 건데 상태가 좋지 않은 거였구나.

많이 안 좋아?"

내가 딸기를 씻으면서 계속 속상해하는 목소리로 이야기하던 중에

그가 건넨 말 한마디에 그 속상함이 사르르 사라진다.

"딸기 상태가 안 좋아 아주 속상하겠지만,

속상함보다는 내가 딸기를 사 온 마음을 기억하고 그 마음으로 먹을 수 있는 걸 잘 골라서

맛있게 먹으면 되는 거야."

그는 그런 사람이다.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아는 사람,

미쳐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감정까지 헤아리는 사람.

올봄,

먹었던 그 어느 딸기보다 오늘 먹은 딸기가 제일 맛있게 기억되는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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