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4월 마지막주 수~목요일, 강릉에 출장을 다녀왔어요.

팀 내 강릉지역의 주문진에 새로운 매장이 오픈해서 신규점이 오픈하기 전에 오픈 준비가 잘 되었는지 점검하는 일과 오픈 당일 지원근무를 하기 위해서죠. 신규점 오픈 전 사전점검은 직원과 고객을 대상으로 각각 나누어서 진행하는데 실제 운영하는 것처럼 주문도 하고 음료도 만들고 동선 체크를 하고 직원들끼리 손발도 맞춰보고 하는 일종의 시뮬레이션이에요.

오랜만의 강릉행 KTX 열차에 타니 설렘과 그리움이 함께 밀려왔어요.

사실 강릉은 저에게는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에요.

서울에서 나고 자랐고 부모님도 모두 어려서 서울로 오셔서 딱히 시골이 없기도 하고 친척들 모두 서울에 계셔서 명절에 멀리 귀향길을 간다던지 하는 경험이 없었는데 강릉살이 8년을 하면서 그렇게 강릉은 저에게 마음의 고향이 되었죠.

새로 오픈하는 매장의 점장은 제가 점장으로 근무하던 매장에서 경력직 부점장으로 함께 근무하던 직원이 점장으로 발령 나서 오픈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강릉을 떠나온 지도 벌써 4년 정도 되었고 그 사이 강릉에 결혼하는 직원이 있어 결혼식에 갔을 때 보고는 오랜만에 보는 상황이라 참 반가웠어요.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책임감 있게 오픈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니 대견하기도 하고 강릉에서 중요한 포인트 매장인데 이 점장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강릉에 처음 발령받아 갔을 때가 2013년이니 벌써 10년도 더 된 시간이네요.

서울에서 근무하다 강릉에 첫 번째 매장이 오픈을 해서 점장을 모집하는 사내공고를 보고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 지원해서 덜컥 합격해서 오게 된 강릉이었는데 강릉은 제 회사 생활에서 '2막'을 시작하게 해 준 곳이었어요.

번아웃

초록색 로고가 좋고, 커피가 좋아 입사지원을 해서 합격하고 발령이 나서 근무하는 매일이 새롭고 재미있는 시간들이었어요. 물론 고객응대가 쉽지 않을 때도 있고, 스케줄 근무라 출퇴근 시간 변경이 있어 일반적인 9 to 6가 아닌 것과 주말에 바쁜 매장 소속일 때는 거의 매주 주말근무를 해야 하는 것, 넓은 매장을 쓸고 닦고 해야 해서 체력적으로 힘이 들 때도 있었지만 그 모든 것들이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닌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었기에 정말 즐거웠어요.

친한 친구들이랑 약속이 있으면 제 퇴근시간 때쯤 맞춰서 친구들이 제가 일하는 매장에 와서 기다렸다 같이 약속 장소로 가곤 했는데 제가 일하는 모습과 얼굴을 보며 하는 말이 모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얼굴'이라고 했었죠. 그렇게 언제까지 재미있고 즐거울 줄만 알았는데 어느 순간 저에게도 '번아웃'이 왔어요.

서비스업의 가장 힘든 점은 무엇보다 '감정노동'을 해야 한다는 점이고 스스로 굉장히 '유연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은연중에 받은 감정적인 스트레스를 언젠가부터 컨트롤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에 너무 속상하고 힘이 들었어요. 특히 가장 사랑하는 가족, 그중에서도 엄마에게 예쁘게 말하지 못하고 퉁명스럽고 때론 신경질 적으로 말하는 제 모습에 이건 아니다 싶었죠. 초록색 앞치마를 입은 제 모습이 너무 멋지고 자랑스럽지만 이렇게 지내다가는 모두에게 못 할 일이겠다 싶은 생각에 진지하게 퇴사를 고민하기도 했어요.

그러던 순간에 강릉에 첫 번째 매장이 오픈을 해서 점장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떴고 무슨 용기에서인지 한번 가보자 라는 생각이 들어 지원을 했어요. 그때만 해도 지방에 매장이 많지 않을 때였고 부모님께는 발령이 확정되고 나서 거의 통보하듯이 강릉으로 발령 났다고 하는 바람에 걱정도 많으셨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철이 없었다 싶다가도 그렇게 강릉에 가지 않았으면 아마 진짜 퇴사하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해요.

Start Act 2

연고도 없는 곳으로 딸을 보내는 부모님 심정을 철없는 딸은 애써 모르는 척하고 그렇게 강릉에 갔어요.

처음으로 자취를 하게 되고 차로 가면 10분이면 갈 거리를 버스로는 30분 넘게 가야 하는 곳이 많아 운전이 꼭 필요해서 서랍 속에서 10년 무사고를 자랑하던 운전면허증이 드디어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중고차도 하나 장만했어요. 모든 게 낯설고 새로웠지만 걱정과 두려움보다는 설렘과 기대가 더 컸어요.

강릉에 첫 번째 매장이라 제가 점장으로 역할을 제대로 해야 했고 제가 하는 행동 하나, 말 하나가 저랑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게는 기준이 되고 보고 배우고 따라 하게 될 것임을 잘 알았기에 더욱 잘하려고 했고 저는 그렇게 강릉에서 '2막'을 시작합니다.

2013년에 강릉에 발령이 나서 점장으로 2년을 근무하다 운 좋게 지역매니저로 승격해서 그렇게 6년을 더 강릉에서 보내고 2021년 다시 서울로 발령이 났어요. 서울로 오기 전까지 강릉, 속초, 고성, 춘천, 원주, 동해, 홍천, 평창의 매장들을 오픈하고 관리하는 지역매니저로 근무하면서 제가 점장일 때 신입 직원으로 입사했던 직원들이 이제는 한 매장의 점장으로 성장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누군가의 성장과 발전을 응원하면서 지켜보고 도움이 될 수 있는 점이 제가 다니는 회사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누군가를 응원하는 건 결국 나를 응원하는 것

신규점 사전점검 시 직원 대상으로 하는 세션에 제가 점장일 때, 저랑 함께 근무했던 직원들도 와서 정말 오랜만에 얼굴들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했어요. 처음 만났을 땐 모두 20대 초반에 앳된 얼굴들이었는데, 이젠 결혼을 하고 아이의 엄마가 된 직원들도 있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나 싶네요. 짧은 1박 2일의 시간을 뒤로하고 서울로 가는 KTX에서 오픈에 수고한 점장과 오랜만에 얼굴을 본 점장에게 메시지를 보냈어요. 그리고 답장으로 받은 메시지에 서울로 가는 KTX에서 내내 마음이 뭉클했네요.

누군가를 응원하는 건 결국 나를 응원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내가 그들에게 그랬 듯, 그들도 누군가에게 그런 역할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5월 20일은 제가 회사에 입사한 지 만으로 18년이 되는 날이에요. 2006년에 입사해서 몇 번의 퇴사의 고비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저를 다잡을 수 있었던 건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했던 응원 덕분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역시나 오늘도 저를 응원하면서 그리고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들도 함께 응원합니다.